누나의 팬티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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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탈의실로 뛰어들어 바지를 내린 순간 엉겁결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농익은 장미처럼 검붉은 팬티가 내 허벅지에 걸려 있었다. 앞뒤는 부드러운 실크 재질에 양 옆은 탁 트인 망사. 누나의 팬티가 틀림없었다. 어쩐지 입을 때 골반이 꺼끌꺼끌하더라니. 꽃무늬 망사를 뚫고 비죽비죽 솟은 내 다리털을 보자 밤새 마신 술기운이 한꺼번에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채호 뭐하냐? 시간 거의 다 됐는데.”
‘으악!’
나는 몸 안으로 비명을 지르며 바지와 팬티를 붙잡고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금속 지퍼의 좁은 틈으로 물건 밑의 보드라운 살이 말려들었다. 시야 속에서 탈의실 천장과 바닥이 위치를 맞바꾸고 있었다.
“끄으으……!”
“어어어, 너 얼굴이 왜 그래?”
선배가 쥐고 있던 호루라기를 떨어뜨리며 다가왔다. 나는 어금니를 부서져라 악물고 귀밑까지 입을 찢어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디 아프냐?”
“으, 아니요. 갑자기 배가 좀…….”
“깜짝이야. 시합 못하는 줄 알았잖냐. 후딱 갔다 와. 애들 다 기다려.”
선배가 내 등을 찰싹 때리고 돌아섰다.
나는 통증이 얼마간 가실 때까지 오금을 떨며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수영복이 든 가방을 메고 화장실로 뒤뚱뒤뚱 향했다.
“아으……!”
대변기에 앉아 조심스럽게 바지를 내렸다.
지퍼에 낀 살갗이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살짝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심하게 쓰라렸다. 이대로 물에 들어갈 순 없었다.
다행히 가방에는 연고가 있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상처가 나기 마련이다. 매번 동기들에게 빌려 쓰거나 의무실을 오가는 일이 귀찮아 며칠 전에 산 것인데 이렇게 개시를 하게 될 줄이야.
이 모든 악재가 다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평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대접 가득 따른 소주를 내밀며 희번덕거리는 누나의 얼굴이 떠오르자 나는 무심결에 화장실 벽을 주먹으로 쾅, 때렸다.
“뭐야!”
“죄, 죄송합니다!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악재의 시작은 어제 저녁 집으로 걸려온 누나의 전화였다. 포상휴가를 나와 반나절 내내 온라인게임을 하고 있던 동생 채하가 전화를 받았다.
“누나 킥복싱 프로테스트 합격했대! 프로선수래!”
이윽고 채하가 다 이긴 게임을 마우스와 함께 내던지고 거실로 뛰쳐나와 외쳤다. 대변을 보고 있던 나는 뒤를 닦는 일조차 잊어버린 채 화장실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나왔다.
“프, 프로선수?”
주방의 어머니가 간을 하던 무국에 한정 없이 소금을 콸콸 들이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장 문을 고치고 있던 아버지는 자기 손등에 망치를 내리찍은 채 멍한 얼굴로 나와 채하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미친년!”
어머니가 국자를 가스레인지 너머로 내팽개치며 소리쳤다. 거의 동시에 아버지가 벌겋게 달아오른 손등을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기쁨과 고통이 뒤섞인 괴성을 토해내면서.
“언제부터 킥복싱을 한 거래? 회사 또 관두나? 벌써 사표 냈겠네.”
“닥쳐 이 새끼야.”
나는 낄낄거리며 지껄이는 채하에게 로킥을 날려 거꾸러뜨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자 누나는 금세 들뜬 목소리로 받았다.
-어. 왜.
“진짜야?”
-그럼 진짜지.
“아니, 어떻게 반 년 만에 프로가 돼?”
-재능이 있잖아, 병신아.
나는 두피에서 피가 나도록 머리를 박박 긁었다.
“엄마한테 미리 말은 해놨어야지! 엄마 쓰러지는 거 또 보려고 그래? 생각 좀 하면서 살아, 누나!”
-알아서 할 테니까 아가리 그만 털어. 삼겹살 쏠 테니까 다들 대기하라고 해!
“누나!”
전화는 그걸로 끊겼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 깊숙이 몸을 눕혔다. 아버지의 아우성이 방 문 너머에서 거듭 크게 폭발하고 있었다.
“집에 소주 없지? 채하 얼른 준비하고 나랑 마트 갔다 오자! 당신은 거, 무국이나 끓이고 밑반찬은 그만해! 오늘은 고기다, 고기!”
원체 술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이니 이게 웬 기회냐 싶었을 것이다. 물론 권투선수였던 자신의 기질을 이어받은 누나의 성과가 정신이 나갈 만큼 기뻤을 테고.
“다녀왔습니다.”
오다가 만났는지 누나는 아버지와 함께 삼겹살과 소주를 잔뜩 사들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누나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반창고를 보더니 이마를 싸매고 입을 다물었다. 격분한 어머니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나이 스물다섯이 돼서 겨우 직장도 자리를 잡았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킥복싱 프로선수라니.
“좀 여자다운 취미를 가져보라고 엄마가 몇 번을 말해! 이래갖고 연애나 똑바로 하겠어? 세상 어떤 남자가 너 같은 앨 좋아하겠냐!”
“엄마는 걱정도 팔자야. 요즘 남자들이 무슨 쌍팔년도 세댄 줄 알아. 여자가 격투기하는 게 오히려 매력 포인트라고.”
나는 누나의 애인인 성우 형을 떠올렸다.  누나가 지하철에서 치한을 잡았을 때 증인으로 함께 경찰서에 간 일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사귀게 되었다. 그게 벌써 반 년 전의 일이었다.
만취한 누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을 때 얼굴을 본적이 있었다. 어수룩한 몸짓과 수줍은 표정. 쓰고 있는 굵은 뿔테안경만큼이나 누나와는 전혀 어울리는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다.
“회사는, 이년아. 앞으로 회사는 어쩌게?”
“그만둬야지.”
“뭐가 어째? 그래, 그만둬?”
“그럼 어떻게 계속 다녀? 이제 운동에만 집중해도 시간 모자랄까봐 자취를 할까 고민인데.”
누나가 지극히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양 눈썹이 미간 위에서 만나기 직전이었다. 아버지가 적절하게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회사 얘기는 그쯤 하고 너, 왜 진작 아버지한테 얘기 안 했냐?”
그렇게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탓하는 기색은커녕 무한한 감동이 어려 있었다.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기가 막혀 참을 수가 없는지 가슴을 때리며 일어서고 있었다.
“말해놓고 지면 쪽팔리잖아요.”
“어디, 쯩 좀 보자, 쯩.”
“오늘 막 통과했는데 뭐가 나와요?”
“아하하, 그렇지. 자, 건배! 근데…… 술 마셔도 되냐?”
“다섯 병까진 문제 없어요.”
“아하하하! 역시 내 큰딸이다!”
술판은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처음엔 어머니 걱정에 썩 내키지 않았던 나지만 마시다 보니 어느새 누나를 지지하고 있었다. 여자가 킥복싱 좀 하면 뭐 어때서 그래? 오히려 멋있잖아! 연거푸 소리치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었다. 결국 나까지 어머니의 속을 박박 긁는 말을 지껄이면서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고 말았다.
술을 마시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명치에 통증을 느끼며 눈을 떴다. 내 배 위에 올라와 있는 아버지의 부르튼 발바닥이 보였다.
“아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싼 채 일어났다. 거실은 도둑이라도 든 것처럼 개판 5분전이었다. 어머니를 제외한 온가족이 거실 곳곳을 차지하고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우와악, 지금 몇 시야!”
시계를 보고서야 정오에 있을 수영시합이 떠올랐다. 후배들 기강을 잡는 게 목적이기에 절대 빼먹을 수 없는 중요한 시합이었다. 후배들은 하나같이 지난 분기의 대회 우승으로 한껏 물이 올라 있었다. 4학년 선배들의 명령으로 3학년 대표가 되어 참가하게 된 나의 역할은 막중했다.
나는 튕기듯이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베란다로 통하는 창문을 열어 건조대 오른쪽 끝에 걸린 팬티를 낚아채 입었다. 바닥에 어제 입은 셔츠와 바지가 나뒹굴고 있었다. 주름 잔뜩 진 옷들을 주워 대충 몸에 꿴 다음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딱 여기까지가 지금에 이르게 된 경위였다.
‘죽겠네 진짜……!’
왜 팬티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까. 이게 다 몸에 밴 습관 탓이었다. 언제나 어머니는 건조대 왼쪽에 누나의 옷을, 오른쪽에 내 옷을 걸어두곤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젯밤, 채하가 세탁기 안의 빨래더미를 꺼내던 모습이 어렴풋하게 기억났다. 누나 때문에 속상해하는 어머니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달래드려야겠다며 만취상태로 빨래를 널던 동생의 뒷모습이.
“야, 이채호! 멀었냐!”
선배가 화장실 문을 부술 듯이 두드리며 소리쳤다. 나는 생각을 거두고 변기에서 벌떡 일어서며 대답했다.
“나가요! 지금 나갑니다!”
누나의 팬티를 벗어 가방에 쑤셔 넣고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쫙 붙는 수영복 때문에 상처 부위가 욱신거렸다. 나는 어금니를 부서져라 악물며 문을 힘껏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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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호 너 뭐하는 거야!”
“헉헉헉!”
마음과 달리 시합 결과는 형편없었다. 술이 덜 깬 상태로 물에 들어가자 소독약 냄새에 구역질이 밀려와 머리가 핑 돌 지경이었다. 게다가 다리 사이의 상처가 쓰라려서 도저히 평소처럼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한껏 떠밀려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말았다.
“이채호. 너 나 좀 보자.”
시합을 지켜본 선배가 수영모를 내던지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부실로 끌려가 바닥에 머리를 박고 물안경으로 목을 조이고 온갖 훈계를 들은 끝에 간밤에 마신 술을 모조리 토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토한 오물을 내 손으로 직접 치우고 난 뒤까지도 선배는 계속 쫑알거리며 나를 훈계했다. 나도 모르게 욕이 터질 지경이 되어서야 선배는 헛기침을 하더니 나를 부실에서 해방시켜주었다.
‘팬티부터 사야지.’
부실을 나서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편의점에서도 팬티 정도는 팔 것이다. 나는 젖은 수영복을 벗고 맨살에 바지를 입었다.
‘아씨……!’
나는 곧바로 심각한 문제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팬티를 안 입으니 중요 부위가 고정되지 않아 심하게 덜렁거리는 것이었다. 하필 오늘 입은 바지도 순면의 보들보들한 트레이닝복이었다. 헐렁하기라도 했으면 좀 나을 텐데, 운동용으로 맞춘 거라 내 체형에 딱 맞는 사이즈였다.
편의점의 위치는 정문 앞 사거리 끝.
끽해야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오가고 있을 그 길을 이런 상태로 돌파할 수는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붙잡은 채로 걸을까? 아니, 차라리 그냥 덜렁거리며 걷는 게 더 나을 정도로 티가 팍팍 날 것이다. 가방으로 가릴까? 화장실 벽면 거울에 모습을 비춰 보았다. 가방 끈이 짧아서 이것 역시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씨발!’
나는 화장실로 가 별 수 없이 누나의 팬티를 꺼내 입었다. 찢고 내던지고 짓밟아 뭉개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편의점에서 새 팬티를 살 때까지만이다. 새 팬티를 사 입고 나면 그 자리에서 불을 질러 태워버릴 거야.
막상 캠퍼스로 나서자 누나의 팬티라도 입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햇살은 쨍쨍, 따라서 시계는 만점. 초여름을 맞아 맨살을 훤히 드러낸 여대생들로 캠퍼스는 포화상태였다. 그것을 덜렁거리며 저 한가운데를 걸었다간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으로 전신의 모공에서 벌레들이 꿈틀꿈틀 기어 나오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걷다 보니 차츰 초조함이 가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거리낄 게 없었다. 여자팬티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투시할 리도 없다.
막상 익숙해지고 나니 착용감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망사의 꺼끌꺼끌한 감촉이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대로 쭉 오후수업을 받아도 괜찮을 것 같군. 보라랑 데이트를 하느라고 용돈도 부족한 참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양반은 못 되는 보라의 전화였다.
“어, 보라야.”
-실례해요. 보라 남자친구 분 맞죠?
보라가 아니라 생소한 여자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나는 핸드폰을 고쳐 잡고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저 보라랑 같은 문창과 친군데요. 저기, 보라가 조금 취했거든요?
“아…….”
내 두 눈은 이제 고작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는 캠퍼스의 시계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좀 오실 수 있나요?
“어디죠?”
-정문 앞에 평택집이요. 아세요?
모를 리가 있나. 평택집은 보라가 속한 문창과 학생들이 즐겨 찾는 낮술 전문 식당이었다.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고 이 시대의 문학은 죽었다느니 세상이 자신의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다느니 떠들어대는 모습은 타과 학생들에게도 익숙한 풍경이고.
왜 이렇게 됐을지 안 봐도 훤했다. 오늘도 마다하는 보라를 억지로 끌어들여 술을 퍼먹였겠지. 전화를 끊은 나는 가방을 고쳐 메고 평택집을 향해 뛰었다.
“에헤헤, 오빠 왔엉?”
식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라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반겼다. 이건 도대체 조금 취한 정도가 아니었다. 보라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평상 위에 대자로 드러누워 수초처럼 온몸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낮술을 뭐 이렇게 퍼마셨어!”
주위의 동기들이 들으란 듯이 소리쳤다. 보라는 나와 마찬가지로 술이 약한 편이었고 애당초 술을 즐기는 성향도 아니었다. 보라의 동기들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돌리며 일도 없이 핸드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는 둥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가자.”
보라의 가방을 대신 메고 나란히 앉아 몸을 일으켜 세웠다. 부러질 것처럼 가느다란 팔을 목 뒤로 돌려 내 어깨에 걸쳤을 때, 보라가 목울대를 한껏 울리며 머리를 높이 쳐들었다.
“보, 보라야! 으아~악!”
뜨겁고 진한 토사물이 쏟아져 나와 어깨에서 명치까지를 신랄하게 적셨다. 나는 두 눈을 까뒤집고 보라의 양 어깨를 잡아 곧추세웠다.
“야, 정신 차려! 화, 화장실……!”
“우, 우웨~엑!”
보라는 허리만 곧추세운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제 옷 앞섶에 엄청난 기세로 토사물을 쏟아냈다. 이 조그만 몸에서 이토록 많은 양을 쏟아내다니. 보라가 입은 꽃무늬의 화사한 원피스가 무르익은 가을 풍경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오빠……. 나 쉬고 싶어.”
보라가 밥풀 섞인 신물을 왈칵 토해내며 잠꼬대를 하듯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작정이었다. 이런 꼬락서니로는 아무데도 못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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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같은 대실료를 지불하고 모텔 방을 잡았다.
“이히히, 간지러워. 오빠.”
“너 조용히 해.”
속옷만 남겨놓고 보라의 옷을 모두 벗겼다. 보라는 끙, 소리를 내며 팬티 속으로 엉덩이를 긁더니 돌아누워 잠잠해졌다.
보라의 옷과 내 셔츠를 욕조에 넣고 세제 대신 바디샴푸를 왕창 들이부어 빨래를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내 바지까지 빨고 싶었지만 누나의 팬티를 입은 점이 마음에 걸려 그만뒀다. 나는 대충 눈에 보이는 토사물만 문질러 지워내면서 특별한 대상도 없이 욕을 퍼부었다.
“목말라…….”
세탁을 끝내고 한 숨 돌리려 TV를 틀었을 때였다. 한참을 더 잘 줄 알았던 보라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목말라, 오빠.”
보라의 달뜬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브래지어에 싸인 풍만한 젖가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만지면 솜사탕처럼 부드럽겠지. 다리 사이에서 물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스트레칭을 하는 척 몸을 뒤틀어 물건을 억누르면서 태연스레 물었다.
“물 줘?”
“어.”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따라 건넸다. 보라는 꼴깍꼴깍 한 컵을 다 마시고는 배시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어, 한 시간 정도.”
“시간 충분하네?”
“어?”
“후후후.”
보라가 양 눈을 가늘게 뜨고 침대 위에서 기듯이 움직여 나에게 다가왔다. 고양이 같은 그 몸짓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보라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내 허리춤으로 치달았다. 순간, 나는 정신을 차리고 뒤로 움찔 몸을 뺐다.
“잠깐만.”
“왜 그래?”
“그게, 오늘은 좀…….”
보라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환히 웃었다.
“바보. 오늘은 괜찮아.”
“어?”
“생리 끝내고 사흘 지났어. 콘돔도 없어도 돼.”
아니 네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라니까? 말로는 내뱉지 못하고 속병을 앓는데, 느닷없이 보라가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처럼 덮쳐들었다.
“아, 안 된다니까.”
“오빠, 나 지금 엄청 땡겨.”
“보라야, 나도 땡기긴 겁나게 땡기는데 진짜 지금은 안 돼.”
“안 되긴 뭐가 안 돼!”
“잠깐만 내 말 좀……!”
음란하다고 할 것까진 아니지만 보라의 이런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었다. 밖에선 다소곳하다가도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면 전투적으로 돌변하는 것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모습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한사코 바지춤을 붙잡은 채 뒤뚱거리며 도망쳤다.
“악!”
등 뒤에 놓여 있던 의자에 발뒤꿈치가 걸렸다. 잃은 중심을 찾으려고 한쪽 발로 폴짝폴짝 뛰다가 두 다리가 꼬여 침대 위로 나자빠졌다. 보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바지를 훌렁 벗겨냈다.
“이게 뭐야?”
보라는 내가 아닌 누나의 팬티를 향해 묻고 있었다. 무표정한 그 얼굴에 이미 욕정은 없었다. 나는 정색하고 새파래진 입술을 달싹이며 다급히 설명했다.
“야, 오해하지 마. 보라야, 내 말 잘 들어. 이건 누나 팬티야. 어제 누나가 킥복싱을 했는데 실수로 팬티를 바꿔 입었어.”
“뭐……?”
“아니, 잘못 말했어. 내가 잘못 말한 거야. 그게 아니고 누나가 대회에서 우승을 해서 가족들이랑 술을 마셨거든. 근데 잘못해서 팬티를 바꿔 입은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니까 이건 누나 팬티라고. 보라야, 내가 술이 덜 깨서 아침에 잘못 입고 나온 거야. 아니, 내 잘못이 아니라 동생새끼 잘못이야. 그놈이 원래 내 빨래를 거는 위치에 누나 팬티를 놨어. 나는 오늘 시합인데 늦잠을 자서 정신없이 입고 나온 거고. 진짜야.”
거짓말도 아닌데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누나의 팬티를 입었다고 먼저 말하는 편이 훨씬 좋았을 텐데. 보라는 기어이 두 손바닥에 제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야, 왜 울어? 이거 진짜 누나 팬티라니까!”
“그럼 엉덩이에 그 이니셜은 뭐야!”
보라가 우는 와중에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다그쳤다. 그 덕분에 나는 입은 나조차도 이제껏 모르고 있었던 팬티 뒷부분의 이니셜을 볼 수 있었다. 'C.H♡S.W' 와, 씨발! 대체 이딴 병신 같은 글자는 왜 새겨 넣은 거야?
“야, 보라야. 이건 누나 이니셜이야! 누나랑 나랑 이니셜이 같아서 그래! 내 이름 채호! 누나 이름 채희! 아우, 못 믿겠으면 전화해 봐. 지금 누나한테 전화할게!”
“시끄러워!”
보라가 베개를 던졌다. 뒤이어 이불도 던졌다. 기어이 내 위로 올라와 마구잡이로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폭주를 말리는 데만도 30분이 걸렸다.
“그만 집에 갈래.”
“보라야!”
소동이 끝나고 잠잠해지기가 무섭게 보라는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제 옷을 집어 입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무슨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기운이 빠진 나는 보라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저 생각했다. 이 이상 뭘 더 어쩌라고? 내 입장도 충분히 억울하고 할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했잖아!
“데려다 줄게.”
“됐어.”
화를 꾹 참고 꺼낸 내 말을 보라는 단번에 거절했다. 성난 얼굴로 고개를 쳐들자 보라는 이미 옷을 다 입고 어깨에 가방을 걸치는 중이었다.
“보라 너 진짜 실망이다.”
“오빠야말로 너무 무신경해.”
“야, 내가 입고 싶어서 이걸 입었냐?!”
“됐다고!”
보라가 돌아보지도 않고 한 발 먼저 방을 나갔다. 나는 혼자 남은 방 안에서 머리를 뒤헝클며 침대 밑의 맨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고 있는데 이 모든 악재의 원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 왜!”
-어디야?
누나의 목소리는 평소 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추궁하는 것처럼 차갑고도 집요한 느낌이었다. 잘못은커녕 억울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던 나는 핸드폰에 대고 쇳소리를 내질렀다.
“썅, 내가 어딘지 알아서 뭐하게!”
-야, 너 미쳤냐?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소리 안 지르게 됐어! 내가 오늘 누나 때문에…….”
-나 때문에? 나 때문에 뭐?
“아, 됐어. 관둬. 끊어.”
-야야야, 채호야!
“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통화기 저편에서 누나의 아득한 한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도 네 빤스 입고 나왔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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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는 나를 붙잡고 다짜고짜 어느 역 앞 편의점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더니 편의점에 들어가 캔 맥주 2개를 사 가지고 나왔다. 내가 맥주의 캔 뚜껑을 따자 비로소 누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말했다.
“나더러 성우 형한테 설명을 하라고?”
입에 머금은 맥주를 뿜어내고 내가 되물었다. 다 큰 남매가, 아니 남매이기 이전에 심하게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다. 과연 누나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가까운 곳에 정신병원이 있다면 데려가고 싶을 정도로 나는 크게 당황했다.
“그래, 내 말은 안 믿으니까.”
누나가 짤막하게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성우 형은 내 팬티를 입은 누나가 바람을 피운 게 분명하니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며 화를 벌컥 내고 가버렸단다. 별의 별 상상이 머릿속을 오고 갔다. 대낮부터 누나와 성우 형은 어디서 서로의 속옷을 확인한 걸까. 차마 민망해서 거기까지 캐묻지는 못했다.
“사귄지 벌써 반년이 넘었잖아. 이 정도 사소한 문제는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사이 아냐?”
“그게 안 되니까 널 불렀지. 아무튼 잘 좀 말해. 이제 곧 올 거야. 난 저쪽 커피숍에 있을 테니까 잘 끝낸 다음에 불러.”
“누나,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성우 형이 좋아? 아니 좋고 말고를 떠나서, 누나의 말도 안 믿어서 동생까지 나서야 하는 이 상황이 정상이냐고.”
“시키는 대로 해. 넌 어려서 남녀 문제를 몰라.”
“아, 나……!”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건 진짜 가족단위 개망신이다. 나는 맥주 한 캔을 입에 대고 단숨에 바닥까지 비웠다. 누나는 나를 잠시 내려다보고는 휑하니 돌아서서 모퉁이 너머의 커피숍으로 가버렸다.
30분가량의 시간이 지나 성우 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피곤에 찌든 얼굴, 축 늘어진 걸음걸이. 모든 게 예전에 한 번 봤을 때와 똑같았다. 역시 누나와는 전혀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 마신 맥주 캔을 찌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기, 성우 형이시죠?”
성우 형이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대로 얼어붙어서는 제자리에서 반 바퀴 돌아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는 성우 형을 쫓아가 대로에서 가로막고 섰다.
“저 아시죠? 전에 한 번 뵀잖아요. 채희 누나 동생 채호입니다.”
“어, 그래. 왜, 왜 왔어?”
“길게 말 안할게요. 그거 완전 오해…… 아니, 제 입으로 진짜 이렇게 말하는 것도 민망하고 미칠 거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누나 바람 같은 거 안 피워요. 누나가 입은 팬티 그거 아오, 그거 제 거거든요? 제 팬티라고요.”
“내 알 바 아냐.”
성우 형이 더 듣기도 싫다는 얼굴로 나를 밀쳐냈다. 나는 성우 형의 양 어깨를 잡고 내쪽을 향해 억지로 돌려세웠다.
“이거 놔!”
“그럼 누나한테 가서 오해하지 않는다고 얘기라도 해요! 이렇게 헤어지는 게 어딨어요? 형이 이러니까 제가 괴롭잖아요! 본인 문제로 동생까지 데려다 이런 걸 시키는 누나도 웃기지만…… 아오, 씨!”
나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전봇대를 걷어찼다. 이렇게나마 내 울분을 보여줘야겠다는 어느 정도의 계산도 있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성우 형이 뿔테 안경을 벗더니 성난 황소처럼 콧김을 픽픽 뿜으며 고함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내가 오늘 얼마나 피곤했는데! 오늘 뿐만이 아냐! 회사 일도 잘 안 풀리고 답답해 죽겠는데! 네 누나는 언제나 내 의견은 듣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혀, 형?!”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아서 약이나 먹고 쉬려고 반차를 냈더니 뭐? 안부를 묻기는커녕 대낮부터 대실을 하자고! 할 수 없이 누워서 못 본 영화라도 좀 볼까 했더니 곧바로 격투기 채널로 돌려버리고는 자기 혼자 ‘흐흥, 흐흥’거리며 좋아하는 꼴이라니! 뭐가 문제인지 네 누나는 몰라! 무신경하다고!”
내가 발로 찬 전봇대를 성우 형은 맨주먹으로 후려쳤다. 깨진 손등에서 살벌하게 피가 튀었다. 성우 형은 손등의 피를 제 뺨에 벅벅 문지르며 다짐하듯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반년도 충분히 길었어. 철창 없는 감옥이란 게 이런 거야.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 나에게도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어. 이제 난 혼자 살 거야. 아무 여자도 안 만나! 충분히 데일만큼 데었어!”
말을 마친 성우 형은 젖어드는 눈시울을 손가락으로 한 번 찍어 눌렀다. 나는 성우 형의 기세에 눌린 데다 뜻 모를 비애감마저 느껴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만이 시끄럽게 귓가를 울려대고 있었다.
이윽고 성우 형은 내 어깨를 한 차례 다독였다. 그리고 그것뿐, 한마디 인사도 없이 터덜터덜 한길 끝으로 멀어져 갔다.
‘무신경하다고?’
보라와 성우 형이 내뱉은 그 말이 머리에서 하나로 겹쳐지고 있었다. 나라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도대체 어떤 회로로 설계되어 있는 걸까. 갑자기, 정말 갑자기 떠올랐다. 오늘은 보라와 나의 100일 기념일이었다.
보라의 수줍은 웃음과 함께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커플 팬티가 있었다. 한 달 전인가, 보라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월급으로 산 비싼 팬티였다.
그래, 오늘은 보라와 나의 100일 기념일이었다. 보라는 100일 기념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당일이 되어서도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커플 팬티 대신 누나의 팬티를 입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부리나케 누나가 기다리고 있는 커피숍으로 뛰어갔다. 누나는 두 손으로 해바라기 자수를 뜨고 있다가 나를 보고는 벌떡 일어났다.
“뭐래?”
“성우 형이랑 헤어져.”
내가 앉기도 전에 통보하듯 말했다.
누나가 뻣뻣하게 목을 쳐들고 두 눈을 부릅떴다.
“누나가 바람피운다고 오해한 게 아냐.”
“뭐? 그럼 뭔데?”
“진짜 답답하네. 성우 형은 누날 안 좋아하는 거야. 그냥 그거 하나라고. 복잡할 것도 없는 문제였어.”
나는 누나의 맞은편에 앉아 성우 형이 한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주제의 사이사이마다 최대한 객관적인 내 의견을 유연하게 곁들이면서. 어느새 누나는 해바라기가 다 뜯어질 정도로 자수를 움켜쥐고 있었지만 기분이 고조된 나는 거리끼지 않고 계속 지껄였다.
“그냥 킥복싱 체육관에서 괜찮은 남자를 만나라니까? 서로 미트도 대주고 스파링도 해주면서 연애하면 좀 좋아? 애당초 책 읽고 영화 보는 거 좋아하는 성우 형이랑 격투기하는 누나는 어울리지도 않잖아. 하하하, 생각해 보니까 새삼스럽게 골 때리네. 치한 잡은 누나의 증인으로 만났다는 것부터 코미디 같은 얘기였어. 이 자수도 성우 형 주려고 한 거야? 자수라니! 누나가? 누나는 이런 것보단 열심히 샌드백 두들기는 게 더 어울려. 차라리 성우 형한테 선물을 할 거면 이런 자수 말고 킥복싱 시합 티켓을 줬어야지. 그게 누나답지. 으이구, 어쨌든 보라가 고작 이런 일로 그렇게 화를 냈을 리가 없지. 속이 나름 얼마나 깊은 앤데 이런 거지같은 일로 화를 내겠어? 아니, 이제 그건 됐고 누나! 보라 100일 기념 선물을 지금이라도 사줘야겠는데 뭐가 좋을 거 같아? 역시 커플링인가? 그치? 플스 사려고 모은 돈 깨야겠다. 한 30만원 돈이면 괜찮게 맞추지? 아, 여기서 이러지 말고 누나 지금 나랑 같이 좀 가서 커플링 좀…….”
누나가 자랑하는 하이킥이 내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홀 내부에 길게 가로놓인 바가 직각으로 섰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나는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덧글

  • WHY군 2012/07/31 19:47 #

    ;;;;;;남매는 속옷 바꿔 입는 경우도 있군요
  • 강한이 2012/08/01 00:29 #

    뭐, 거의 없겠지만 바꿔 입는 경우도 분명 있긴 있겠죠?!
  • enfys 2012/10/08 18:10 # 삭제

    꺄하하 재밌게 읽었어요~
  • 강한이 2012/10/16 14:35 #

    후, 드디어 쓴 보람이 느껴집니다.
  • ccomrade 2012/11/03 17:33 # 삭제

    재밌게 읽었습니다. 저런 경우도 있군요~ ㅎㅎ
  • 강한이 2012/11/05 18:13 #

    없습니다! 저런 미친 세상이 현실에 있을 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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